구성 문화재

히로무라 숭의단 주의서

페리 원정이 있기 2년 전인 가에이 4년(1851년)에 귀향한 하마구치 고료는 히로무라(지금의 히로가와초) 근해에도 외국의 배가 출몰하게 된 것을 불안해 하며 마을 남자들을 모아 국방의 필요성에 대해 설파했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들이 마을을 지키자고 주민들을 설득해 8월에 자경단을 결성합니다. 그 설립서가 히로무라 숭의단 주의서이며, 결단식을 행한 히로하치만 신사에 봉납되어 있습니다. 외국에 대항하려면 청년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고료는 이듬해에 학문과 무예 연습장을 개설하는데, 그것이 바로 추후의 다이큐샤입니다. 히로무라 숭의단의 단원들은 안세이 원년(1854년)의 쓰나미 피해를 재건할 때에도 크게 활약했습니다.

  • 히로무라 숭의단 주의서
  • 히로무라 숭의단 주의서

■이 곳과 관련된 하마구치 고료의 위업

  • 히로무라 숭의단のピクトグラム

    히로무라 숭의단

    국방을 위해 하마구치 고료가 주민들과 함께 결성한 자경단 “히로무라 숭의단”이 재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지원하는 데 공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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